달빛마을 소개

달빛마을 소개

어르신들이 행복한 마을...
자손이 돌아오는 마을....

약 400년 전 연산군 때 양주골 강부자라는 인심 좋은 사람이 외아들과 잘 살아 가던 중 아들이 혼기가 되어 건너 마을 몰락한 안씨성을 가진 처자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혼의 부부의 사이가 금실은 너무 좋아 모든 이들이 부러워했다. 그런데 대을 이어야 하는 자손은 생기지 않고 아들은 몸이 쇠약해 가면서 의원의 진단에 의하면 몸 안 혹이 생겨(지금의 암)죽음에 임박하였다고 한다. 이에 며느리 안씨는 송구하고 죄스러워 터줏가리가 있는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하늘에 정성껏 기원을 올리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룻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 용문산 동북쪽에 세가지 계곡물이 만나는 곳에 땅이 흔들려 내가 설 수가 없으니 나를 일으켜 세워라.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 자식을 가지게 될 것이고 남편도 건강을 되 찾을 것이다” 라고 하고 사려졌다. 이 꿈을 이야기 하니 강부자는 유명한 지관을 세명을 시켜 이 자리를 찾기 시작하여 보름 만에 세 지관이 한자리에서 만나니 그곳이 현재 산음자연휴양림이 있는 고북길347번지 삼천골(三川汨)이었다.  그 자리를 보니 미륵불 같은 큰 돌이 누워있어 많은 이들을 동원하여 바르게 세우고 정성껏 제를 올리고 나서  그날 부부는 동침을 하니 다음 날 부터 남편은 몸이 회복되었고 부인은 회임을 하여 후일 아들을 나았다. 신령이 다시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첩첩산중이나 오래오래 시간이 지나면 너희보다 더 몹쓸 병이 걸린 사람들이 찾아 효엄을 보게되어 여기 첩첩산중이 큰 마을로 변하게 될 것이니 나는 여기를 떠날수 없다“ 하였다. 

그 영험함의 기운이 서린 이곳에 1960년대에는 약 260호에 수 천명의 주민이 이북에서, 강원도에서 이주하여 화전을 이루고 많은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는데  1970년대 화전민 이주정책에 의해 많은 이들이 도심으로 떠나고 현재에는 몇 대를 이어 달밭(화전밭)과 다랭이 논의 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촌로가 아름다운 마을을 형성하고 있으며,  신령의 예언대로 수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목적으로 1997 조성을 시작으로 2000년에 개장한 국립산음휴양림은 년 중 십 수만명의 사람들이 도심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 위하여 찾는 국내 제 1호의 치유의 숲이 되었다.

이런 마을의 정기를 전통으로 이어오는 윤재정의 선대 5대조인 윤행귀가 김포에서 살다가 이 마을로 이주를 하여 가계를 형성하고 화전으로 이룬 전답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는데 가축은 산짐승들이 나타나 매번 죽이고 전답에 이룬 곡식도 산짐승들이 피해를 주어 도저히 가계를 이어가기 힘들어 범박골이라는 산에 매년 10월 4일 산신제를 지내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용두리 장에서 황소 한 마리를 사서 부정타지 않도록 밤중을 기해 마을로 끌고 와서 정성껏 잡아 제를 지내는데 제주는 음력 10월 1일 3일전에 쌀 한 되 한 홉으로 술을 빛고, 떡은 쌀 서너 되 홉으로 떡을 빛어 제물로 하며 산제사는 고기의 왼쪽부위만 가지고 올라가 제물로 쓰는데 이는 왼쪽을 높이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20여년전부터 윤씨 집안에 제를 마을의 제로 정하고 지금은 돼지 한마리를 잡으며 3가구에 1명의 통수를 두어 부정타지 않는 제사를 준비하고 마을 주민이 참석하는 산신제를 전통으로 이어가는데 산신제가 끝나면 제물로 쓰여진 돼지를 분육하여 가가호호 나누어 주어 그 영험을 같이 한다. 현재는 범박골의 2016년 새로운 곳으로 산신제 장소를 옮겨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용문산의 뒷 편에 위치한 달빛마을은 약 70여가구 17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마을 입구에서 약 3km를 올라가면 국립산음자연휴양림이 2000년 개장하여 전국에서 가장 많은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휴양객이 방문하고 있다. 
자연경관이 원시림 수준의 청정지역인 산음은 뒷산으로는 봉미산과 앞산인 두름산(상왕봉)이 자리하는 사계절이 아름답고 계곡이 수려한 수도권 최고의 휴양마을 이다.